눈물은 감정의 사치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참 많은 학우들과 민주열사들이 고문과 공권력의 폭력에 죽거나 다쳐 불구자가 되었다는 소식이 매일이다시피 들리던 그 때, 굶기를 밥먹듯 하다보니 야위디 야위었던 선배가 종철이의 죽음과 한열이의 죽음을 이야기 하다가 그만 터져나오던 울음을 감추지 못하던 제게 했던 말입니다.
“우리에게 눈물은 감정의 사치일 뿐이다. 동지와 같은 비극이 내일은 내 일이 될 지도 모른다. 나 한 사람의 나태함으로 많은 동지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
지금 생각하면 참 암울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광주 학살의 원흉 처단, 직선개헌 쟁취’라는 잇슈 하나를 두고 거리에서 시위를 멈추지 않기 위해, 비상연락망을 가져야 했고, 서로에 대하여 굳게 입을 다물어야 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슬픔에 우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것을 감정의 사치라고 생각하며 삼켜야 하는 그 순간의 진실이 정말 낯설고도 억울하여 속으로 끝없이 울어야 했습니다.
오늘 노무현 당신의 서거를 두고 날이 갈수록 심장이 아파오는 이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꾸 눈물을 흘리면서 그 때의 그 한마디를 돌이켜 봅니다. 감정의 사치....조국의 민주화는 도돌이표를 그리는 돌림노래처럼 다시 독재의 시절로 회귀한 지금,
다시 운동화 끈을 조이고, 그들의 뻔뻔한 얼굴을 향해 ‘진실을 왜곡하고, 진리를 가두지 마라“고 목청을 올려야하는 이 암울함이 참, 기가 막혀서 시시때대로 눈물이 납니다.
당신의 떠남이 슬프냐구요? 아닙니다.
인간은 어차피 한번은 가는 것이고 삶과 죽음은 하나입니다.
동의합니다. 그 유서가 당신께서 작성하신 것이든, 어느 음모꾼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죽음도 삶의 한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떠남을 두고 어찌 울지 않을 수 있는지요.
당신 개인의 죽음이 아닌 이나라 민주주의 죽음이고, 이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역사속의 무수한 영혼의 심장에 대못을 박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될 사건의 중심에서 처참하게, 비명에 가신 이 원통함이 당신의 떠나심인데, 어떻게 울지 않을 수가 있는 지요. 참을 수 없어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아직 울고 있는 저를 스스로 책망해봐도 방법이 없습니다. 당신의 빈자리는 후퇴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만큼, 서민들의 고단하고 남루해져가는 아픈 일상의 무수함 만큼 크고 끝이 없습니다. 밥을 먹어도 말을 해도, 이웃과 인사를 나눠도, 마음안에 공허를 감당하기 힘들어 이내 구석자리로 들어가 앉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참, 못난 모습입니다.
16대 대통령 당선! 그 찬란했던 날에 기쁘할 수만 없었던 사람은 저 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거대한 반역사적 무리들의 뿌리는 이 땅의 구석구석에 뿌리깊게 손을 뻗고 있었지만, 이나라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많은 사람들은 생존적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생계의 몸부림에 몸을 던져야 하는데, 당신과 몇몇 인사들이 혈혈단신 적진으로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는 청와대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정권 흔들기는 가공할만 했습니다.
그랬던 지난 날을 돌이키면, 차마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옵니다.
함께 힘을 합해야 할 때 각계로 흩어져 목구멍에 풀칠하기에만 열을 올렸던 우리들의 모습을 돌이켜 볼때 부끄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힘으로 살아내지 못한다면 이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모든 사람들은 무능력한 시정잡배에 지나지 않는다고 떠들어대는 저들의 악다구니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컸던 것도 사실이지만, 우선 너무나 고단했던 나날로부터 좀 놓여나서 한 인간의 일상에 파묻혀 사소한 것들 속에서 평안을 누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평화를 누려보고 싶었던 유혹에 약해졌던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일부러 뉴스를 피하고, 당신의 소식을 멀리했습니다. 도대체 일하고 밥좀 먹고 살고 싶은데 왜, 허구헌날 운동화를 꺼내 신고 거리로 뛰어나가고 싶은 일들이 자꾸 벌어지는 것인가, 불평도 했습니다. 그 전쟁의 한가운데서 외로이 싸워나가는 동안 대통령이라는 화려한 명패 속에서 당신 개인의 삶은 얼마나 격류에 시달려야 했을지, 짐작하면서도, 떠밀어 넣어놓고 짐지워 놓고, 저는 저 혼자의 일상을 마음껏 누렸습니다.
그 부끄러움을 오늘 이렇게 고백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것이 이렇게 큰 재앙을 초래할 줄 몰랐습니다.
나 한사람의 이기가 이렇게 온나라를 뒤덮는 거대한 이기심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젯밤 꿈에 당신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자.’고 하시던 당신의 얼굴은 많이 야위어 있었습니다.
당신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이나라 국민들의 상처난 가슴을 묵묵히 바라보며,
당신은 그 곳에서 눈물 흘리고 계셨습니다. 그 야윈 얼굴, 야윈 손을 잡고 저는 다시 통곡하였습니다. 당신도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잠에서 깨어보니 온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습니다.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고,
허전해서 참을 수가 없고,
미래가 암담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이 현실이 너무나 어이 없고 막연하여 견디기 힘이 듭니다.
5공시절의 그 혹독하던 거리, 걸핏하면 머리채를 잡아채던 기세등등했던 백골단의 서슬 앞에 이를 악물고 깡다구를 부리며 죽음도 불사하겠다 마음 먹었던 그 시절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시절이 아닌지 싶습니다.
그토록 비열하고, 그토록 파렴치한 장면을 매일매일 목도하면서,
그래도 이 나라를 사랑할 것인가.....마음 속에 자꾸만 의문부호를 찍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이제 가야겠다.’ 꿈속에서 하신 말씀을 새겨 듣겠습니다.
보내 드려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하늘 저 끝 어딘가 마련된 당신의 자리로 어서 보내드려야겠는데,
차마 떠나지 못하는 당신의 무거운 걸음이나, 차마 보내드리지 못하고 망연히 울고 있는 이 땅의 민주주의는 아직 작별의 현실을 받아들이기에 버거운 것 같습니다.
이 슬픔,
이 크나큰 슬픔을,
이 가공할 줄어들지 않는 슬픔을 안겨놓고,
오늘도 휘황한 말잔치를 벌이는 자들의 철면피한 태도가 난무하는 나날 속에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는데,
증오와 반목이 저지른 이 끔찍한 수렁이 보여주는 이 땅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는데,
다시는 당신처럼 아까운 영혼이 탄생하지 않는 상식과 미안함이 통하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슬픔을 극복하여 새로운 미래로 승화시켜야 하는데,
이끌어주는 목자를 잃은 것처럼 이렇게 아득하기만 합니다.
누군가 밝혀주는 작은 촛불 하나하나에 마음을 의지하여
다시 먼 길을 떠나야 하는데, 저는 아직 슬픔을 떨쳐내기가 힘이 듭니다.
이 땅에 쓰러진 아직 어리석고 어린 민주주의의 모습이 너무나 아픕니다.
그래도 그 큰 나무 아래 시원한 그늘에서 참, 넉넉히 웃고 떠들었던 노무현식 민주주의에 대한 기억을
마음에 새기며 다시 새 길을 가야만 하는데, 아직 슬픔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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